
경복궁 주요 건물들 개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경복궁 주요 건물들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이 건물들은 주로 임금님이 활동하실 때 사용했던 건물들입니다. 우리가 경복궁을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광화문에서 부터 교태전까지 남에서 북으로 일렬로 늘어서 있는 건물들입니다. 사실 경복궁에는 5개의 주요 건물들 외에도 아주 많은 건물들이 남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경복궁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전소되거나 철거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이1868년 경복궁을 재건했을 당시에 비하면 지금은 그 10% 정도에 그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복궁은 조선 500년의 역사를 간직하며 조선건국의 상징이자 조선역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경복궁의 창건과 수난의 역사는 페이지 맨 하단의 링크를 참조하세요~
조선의 이궁들(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과는 달리 법궁(으뜸이 되는 궁)인 경복궁은 두 가지의 큰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 첫째, 다른 궁궐들의 건물들에 비해 경복궁의 건물들이 더 큽니다.
• 둘째, 경복궁의 5개 주요 건물들은 광화문 - 근정전 - 사정전 - 강녕전 - 교태전입니다. 이 주요 건물들은 남에서 북으로 일렬로 늘어 서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궁궐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큰 특징입니다.

광화문(光化門)
광화문 정면 모습
경복궁 주요 건물들 소개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正門)입니다. 창경궁의 홍화문을 제외한 조선 궁궐들의 정문은 일반적으로 남쪽에 위치합니다. 풍수지리(風水地理)와 관련하여 남향의 정문은 양기운을 안으로 들인다 하여, 궁이나 사찰에서는 남쪽으로 정문을 내는 것이죠. 광화문 역시 경복궁의 정문이므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광화문은 3개의 아치형의 문과 2개의 기와지붕, 그리고 2층 구조로 되어 있어 더욱 크고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또한 법궁만이 가지는 특별함인 것입니다.
-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조선의 궁궐 출입문들에는 보통 3개의 문이 나있습니다. 그런데 가운데 문은 오직 왕과 왕비 만이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의 신분의 사람들은 양쪽의 문으로만 통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만약 사극 드라마에서 처럼 신하가 가운데 문으로 출입을 하였다면 아마 반역죄로 다스려져 사형에 처해졌겠죠?
근정전(勤政殿)

1. 근정전의 역할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입니다. 정전이라 함은 궁궐이나 사찰 등에서 중심이 되는 건물을 일컫습니다. 따라서 기타 다른 전각들에 비해 규모가 크고 모양새도 대체로 화려한 편입니다. 이 곳에서 경복궁의 가장 중요한 행사가 이루어졌던 것이죠.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으로서 국가의 위상과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곳이었죠.
근정전의 넓은 마당을 ‘조정(朝廷)’이라고 불렀으며 여기서는 주로 왕위 즉위식, 왕에 대한 새해인사, 왕실의 혼례식, 외국 사신 접견 등 국가적으로 크고 중대한 행사가 있을 때에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은 고려말, 유학을 공부한 신진사대부에 의해 세워진 나리입니다. 따라서 경복궁의 이곳저곳에서 신진사대부들의 유교정신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한 삼봉 정도전((三峯 鄭道傳)은 '임금이 부지런하면 나라가 흥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조선의 임금에게 '부지런히 정치하라.'라는 뜻으로서 '근정전(勤政殿)'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었습니다.
2. 근정전의 구조
근정전의 대문인 근정문에서 부터 건물 까지 이어지는 3개의 길을 ‘삼도’라고 불렀습니다. 세개의 길이라는 의미죠. 삼도 중에 가운데 길을 ‘왕의 길’이라는 뜻으로 ‘어도(御道)’라고 불렀는데 자세히 보시면 양쪽의 길에 비해 살짝 높은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까 광화문에서 살펴 본 것처럼, 어도 역시 오직 임금님만이 이용할 수가 있었죠.

근정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중간 부분을 ‘답도(踏道)’라고 불렸습니다.
답도 역시 오직 왕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답도 위 비석에는 ‘봉황(鳳凰)’이라는 상상속 동물이 새겨져 있습니다.
예로부터 봉황은 ‘성군이 나라를 태평성대로 이끌면 나타난다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조선 군주들의 선한 정치를 염원하고자 새겨진 것이죠. 특히 봉황은 다른 궁궐들에서도 곳곳에 찾아볼 수가 있답니다.

중요한 관전 팁을 알려 드리자면, 근정전의 앞쪽에서는 볼 수 없으나 옆쪽에 난 창문들을 통해서는 천장의 가운데 부분을 볼 수가 있는데, 천장의 가운데 부분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는 하나의 여의주를 두고 싸우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을 볼 수가 있답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경복궁 관람의 묘미인 셈이죠.

근정전 조정에는 마치 묘비석처럼 생긴 돌들이 보입니다.
이 돌들을 품계석(品階石)이라고 일컬었는데 행사가 있을 때 신하들의 계급에 따라 정1품 > 종1품 > 정2품 > 종2품……종9품 까지, 높은 계급은 앞쪽으로, 낮은 계급은 뒤쪽으로 주욱 도열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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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전(思政殿)

또 다른 경복궁의 주요 전각인 사정전은 경복궁의 편전(便殿)입니다. 편전이라함은 왕의 집무실이었던 곳을 의미합니다.
이 곳에서 조선의 왕들은 나랏일을 돌보거나 신하들과 공부도 하고 토론(경연經筵)도 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 가끔씩은 외국의 사신을 접견하기 위한 공간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 사정전(思政殿)이라는 이름은 생각하면 슬기롭고 슬기로우면 성인이 된다.’는 <시경(詩經)>의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즉 왕으로 하여금 깊이 생각을 하며 정치를 해나가길 희망하는 정도전이 지은 이름입니다.
강녕전(康寧殿)

강녕전은 경복궁의 대전(大殿)입니다. 왕이 잠자리에 들기 위한 침소라는 의미이지요.

- 왕의 침소인 강녕전의 가장 큰 특징은 건물의 양쪽으로 두 개의 방이 있는데, 그 두개의 방에는 각각 우물 정(井) 형태로 9개의 자그마한 방으로 또 다시 나뉘어 집니다. 왕은 이 18 개의 방 중에서 한 칸을 골라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자객이 들어 왕을 시해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처였지요. 또 자객이 매복하지 못 하도록 가구도 한 점 없는 것 또한 강녕전의 특징입니다.
강녕전이라는 이름은 왕의 편안을 바라는 희망을 담아 정도전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교태전(交泰殿)

교태전은 경복궁의 중전(中殿) 또는 내전(內殿)이라고 불이우던 곳입니다. 왕비의 침소라는 의미지요. 교태전이라는 이름은 이름 자체만으로도 무언가 야릇한(?) 느낌을 풍기기도 하는데요. 우리가 예상하던 바와는 달리 ‘하늘과 땅의 기운이 조화롭게 화합하여 만물이 생성한다.’라는 주역(周易)에서 등장하는 심오한 개념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정도전에 의해 지어진 이름이죠. 참고로 정도전은 경복궁에 있는 모든 전각들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후 그는 왕자의 난의 희생양이 됨으로써 다른 궁궐 건물들의 이름은 짓지 못 하고 눈을 감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경복궁의 전각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전각들 5가지를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임진왜란(1592년 ~ 1598년)을 겪으며 완전히 소실 되어 약 300년간 폐허로 남아 있다가 1865년에 이르러 흥선대원군에 의해 재건되었습니다. 당시의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의 귀한 피와 땀으로 추진된 재건 과정이었지만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관리소홀 등으로 여러 차례 크고 작은 훼손이 반복되었습니다. 경복궁은 조선의 500년 역사와 그 정통성을 상징하는 법궁이었기에 100번을 무너져도 100번을 다시 지어야할 이유와 가치를 지닌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보전해야할 후손들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여행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문화재들이 훼손될 때 마다 마음의 큰 고통을 느끼곤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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